자유 세상/편안한마음

1006개의 동전

뱅키호테 2009. 3. 3. 17:01


예상은 했지만
아주머니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놀라고 말았다.

그녀의 얼굴은 한쪽이 심하게 일그러졌는데,
가운데 있는 두 개의 작은 구멍으로 그곳이
코가 있던 자리임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사회복지과에서 나왔어요."

"너무 죄송해요,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시게 해서요.

어서 들어오세요.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 밥상 하나와
장롱 뿐인 방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듯했다.

그녀는 어린 딸에게 음료수를 내오라고 했다.

"괜찮습니다.

편하게 계세요.

얼굴은 왜 다치셨습니까?"

이 한마디에 그녀의 과거가 줄줄이 이어졌다.

어렸을 때 집에 불이 나서 아버지와 둘만 살아 남았고
그때 입은 화상으로 온 몸이 일그러졌다는것.

"그 뒤로 아버지는 허구한 날 술만 드셨고 절 때렸어요.

아버지 얼굴도 흉터투성이었죠.
도저히 살수 없어 집을 나왔어요."
집을 나온 그녀는 부랑자 보호시설에서 몇 년을 지냈다.

"거기서 남편을 만났어요.
이 몸으로 어떻게 결혼했느냐고요?
남편은 앞을 못 보는 사람이었거든요."

그이와 살면서 지금의 딸아이도 낳았다.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고 아주머니는 말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남편은 아이가 태어난지 얼마 뒤
시름시름 앓더니 결국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이가 할수 있는 일은 전철역에서 구걸하는 일뿐.
어느의사의 도움으로 무료 성형수술도 여러번 해보았지만
그녀의 얼굴은 나아지지 않았다.

수술만 하면 얼굴이 좋아져 웬만한 일자리는
얻을수 있겠다는 희망과는 달리,
몸과 마음에 남은 상처는 그녀를 다시금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넣었다.

부엌을 돌아보니 라면 하나 쌀 한 톨 남아있지않았다.

"쌀은 바로 올 거고요, 보조금도 곧 나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하며 막 일어서려는데 그녀가 장롱 깊숙한 데서
무언가를 꺼내 내 손에 쥐어주었다.

검은 비닐봉지 안에서 짤그랑 소리가 나는 것이
무슨 쇳덩이 같기도 했다.

봉지를 풀어보니 100원짜리 동전이 하나
가득 들어 있는게 아닌가?
어리둥절한 나에게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혼자 약속한게 있었어요.
구걸하면서 1000원짜리가 들어오면 생활비로 쓰고,
500원 동전이 들어오면 자꾸 시력을 잃어가는 딸아이
수술비로 저축하고, 100원짜리는 나보다
더 어려운 어르신들을 위해 드리기로요.........

부디 좋은데 써 주세요."

그 돈을 내가 꼭 가져가야 마음이 편하다는
그녀의 말을 뒤로하고 집에 돌아와 세어본
동전은 모두 1006개였다.

돈을 세는 동안 손은 더러워졌지만,
나는 감히 거룩한 더러움을 씻어내지 못하고
온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고 말았다.

<경향잡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