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의 별난 여아 선호사상
이태석 신부
<생활성서 2월호 아프리카의 햇살 전문>
이곳 수단에는 우리의 사고 방식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화들이 꽤 있다. 재미있어 혼자 웃어 넘기고 마는 경우도 있지만 알게 모르게 문화충격을 받을 만큼 아주 특이한 문화들이 꽤나 많은 편이다. 그 중에 하나가 ‘여아선호사상’이다.
문화적으로 미개한 곳이지만 여전히 남성 우선의 사회인 우리나라와 달리 여자를 아끼고 중시하는 여인들을 위한 천국이다. 임산부가 사내아이를 출산하면 모두들 시큰둥해 하지만 여자아이를 낳게 되면 정말 큰 경사로 여긴다. 가족은 물론 온 동네가 잔치 분위기다. 칠 공주만 줄줄이 낳아 시집으로부터 평생 구박을 받던 우리나라의 한 맺힌 옛날 어머니들, 이곳에 오면 화병도 낫고 귀부인 대접도 받을 수 있다.
찢어지게 가난하여 벌거벗고 다니는 남자아이들을 동네에서, 아니 주일 미사가 있는 성당 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여자아이들은 예쁘고 화려한 옷 아니면, 최소한 깨끗하게 세탁된 옷으로라도 항상 치장이 되어 있다.
고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쟁 고아들이 많아 우리가 운영하는 기숙사에도 열 댓 명의 남자 고아들이 있지만 여자 고아들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부모를 잃어도 사촌이나 팔촌 아니면 사돈에 팔촌에 이르는 먼 친척이라도 여자아이는 꼭 걷어 키우려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렇게 여자들이 특별 우대를 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결혼을 하기 위해 여자를 데리고 오는 데 남자 측에서 여자의 아름다운 정도와 건강한 정도에 따라 적게는 30마리 많게는 200마리까지의 소를 건네야 하기 때문이다.
여아선호사상, 예쁘게 잘 치장한 여자들의 모습, 여자를 보물처럼 아끼고 잘 키우려는 것 등등 외형적인 것들만 보면 이곳은 분명 ‘여자들의 천국’ 이다. 하지만 자세한 내막을 알고 나면 이곳은 외려 ‘남존여비사상’ 이 철저한 곳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여자아이들을 아름답게 꾸미고 치장하며 될 수 있는 한 잘 먹이고 잘 입히는 것은 받을 ‘소’ 의 수를 늘리기 위한 것, 즉 값이 더 많이 나가도록 상품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지 결코 여자를 한 인간으로서, 남자보다 더 귀중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은 아니다. 서글픈 일이지만 이것이 수단의 현실이다. 더욱 서글픈 것은 결혼 때 팔려온 여인네들은 죽도록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줄줄이 아이들을 낳고 소처럼 일 해야 한다. 말 그대로 ‘소 값’을 해야 하는 것이다.
100마리였든 200마리였든 지불된 ‘소’가 고스란히 여자의 부모들과 가족들에게 돌아가는 것이지 당사자인 ‘신부’에겐 무용지물인데도 말이다.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그 값을 육체적 노동으로 갚아야 하니 차라리 적게 받고 보내면 좋으련만 문화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남자의 나이도 여자의 나이도 상관하지 않는다. 여자는 생식이 가능한 사춘기만 지나면 그만이고 남자는 소를 많이 소유하고 있는 한 50대도 좋고 60대도 좋다. 거기에다 일부다처제 문화이기에 부의 정도에 따라 부인을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있다는데 두세 명의 부인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고, 많게는 60명까지 부인을 거느린 유지 아닌 ‘유지’도 있다. 60대 노인의 첩으로 들어가기 싫어 사랑하는 젊은 남자와 도망쳐버리는 10~20대의 여성들도 꽤있다. 심지어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한번은 트럭 사고로 짐 칸에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다쳐 우리가 운영하는 병원에 수십 명의 부상 환자들이 실려온 적이 있었다. 그 중에 한 달 정도 된 여아를 한 남자가 안고 있어 “엄마는 어디에 있냐?” 하고 물으니 사고로 엄마는 즉사하고 아이만 지적적으로 살아 남았다고 했다. 여아를 안고 있는 남자가 당연히 아버지려니 생각되어 “아버지 되시냐?”고 물으니 아버지도 친척도 아니고 이웃에 사는 사람인데 아이가 불쌍해서 자기가 걷어 키우려 한다며 아기의 상태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의 다른 손에는 여기선 정말 귀한 분유 깡통과 젖병이 들려 있었다. 없는 와중에도 가진 것 다 털어 이웃을 살리려는 그를 보며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가 마치 살아있는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그 감동은 잠시, 옆에 있던 간호사가 “그 아기가 여자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손대지 못하도록 먼저 선수치는 수법 중 하나”라며 귀 뜸을 해주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거룩한 복음과 처참한 현실을 왕복 달리기 하며 하늘이 무너지는 실망감 속에서 무능하게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이었다.
아북과 로다라는 두 자매가 있었다. 집안은 아주 가난했으나 인물과 재주가 남다를 뿐 아니라 머리도 영특하여 항상 많은 사람들로부터 특별한 관심을 받는 아이들이었다. 신심도 깊어 새벽미사를 하루도 빠짐 없이 참석했고 또 음악적인 재주가 뛰어나 특별한 형사 때마다 언니인 로다는 마이크를 잡고 선창을 도맡아 했다. 톤즈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로다가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룸벡이라는 다른 도시로 유학을 떠난 뒤엔 동생 아북이 언니의 자리를 그대로 이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둘은 여기서 아무에게나 시집가 스스로의 삶을 포기 시키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가끔씩 수도 성소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의외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자기들 스스로 아버지에게 성소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적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의 문화를 알기에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항상 내심 불안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로다가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방학을 맞아 톤즈로 돌아오고 아북이 톤즈에서 중학교를 마친 재작년 12월 말, 매일 빠짐없이 새벽미사를 나오던 두 아이가 일주일째 보이질 않았다. 동네의 다른 아이들에게 물어보았으나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몰랐다. 둘이 사라진 지 한 달쯤 지났을때 아북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눈물로 쓴 긴 사연의 편지였다.
12월 어느 날 아침 아버지가 “수녀님이 되려면 가족들의 동의가 있어야 하니 어른들이 많이 있는 120킬로미터 떨어진 와랍이라는 마을로 함께 가서 상의를 하자”는 말에 함께 그곳으로 가게 되었단다. 그곳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이상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부산하게 움직이는가 싶더니 여러 명의 남자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두 자매의 손과 발을 묶어 각각 다른 곳으로 끌고 갔다. 가서 보니 그곳이 바로 결혼식을 준비하는 신랑의 집이었단다. 그렇게 아북과 로다는 팔려갔다.
이렇게 짧은 이야기가 몇 년 동안 두 아이가 몰래 키어온 꿈과 희망이 순식간에 사라진 이야기의 전부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고 믿고 싶지도 않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도 수단 이곳 저곳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을 나무랄 수가 없다. 이곳 사람들이 악해서도 아니고 모자라서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수백 년간 이어 온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문화의 한 부분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들의 문화이기에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면서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식의 사고가 토착화에 대한 올바른 사고는 아니라 생각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 대단한 인내심을 필요로 하긴 하겠지만 결국 그리스도교의 정신을 이곳의 문화에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이 올바른 토착화라는 것을 잊고 싶지는 않다.
예수님께서 이 시대에 수단에서 태어나셨다면 어떤 기적들을 일으키셨을까,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해본다.
하지만 이것이 부질없는 생각이라는 것을 안다. 예수님이 이 시대에 태어나지 않으셨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사람들을 사랑하여 이곳에 함께 계시며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을 함께 바라보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침묵하며 바라만 보고 계시는 데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예수님 나름대로의 생각과 계획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단지 우리 선교사들이 그 계획의 조그만 도구가 되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끈질긴 인내가 최고의 무기일 듯싶다. 기다려야 한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서 기다려야 한다. 수 천번 수 만번 치다 보면 바위도 부서지는 날이 오리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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