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바람] 다정한 그대, 잊지말아요 ‘5월 광주’에 폭도는 없었다는걸 | |
민들레 소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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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때 자취방서 떨던 여고생 고박 네 시간 걸어 고향집으로 26년뒤 친구들 만나 ‘화려한 휴가’ 아픔·분노에 울고 진실에 또 눈물
금남로에서 꽤 떨어진 풍향동에서 친구와 자취를 하고 있었고 마침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와 피곤하지만 기분은 한없이 좋았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등교를 하자마자 담임선생님께서 심각한 얼굴로 들어오셔서 휴교령이 떨어졌으니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셔서 영문도 모른 채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전화도 불통이고 차도 끊겨서 시골집도 갈 수 없게 되자 친구와 난 좁은 자취방에 갇혀서 집밖으로 한발짝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대학생과 고등학생은 무조건 끌고 간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기 때문이죠. 며칠 후 총소리가 멎고 조용해지자 친구와 저는 조심스레 밖으로 나와 시내를 한바퀴 둘러보았습니다. 군인들이 보이지 않던 거리에는 온통 부서지고 연기에 그을린 건물과 차들이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가게는 텅텅 비어 있고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날인가 광주역 앞에서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방송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연막 소독도 하는 등 광주는 점차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었습니다. 헌혈하는 모습도 보였구요. 나가는 길이나마 그동안 봉쇄했던 길도 허용이 되어 저는 부모님이 계시는 담양으로 빨리 가야만 했습니다. 가는 길목마다 총칼을 찬 군인들이 무서운 표정으로 검문을 했고 쳐다보거나 순순히 응하지 않으면 마구 때렸기 �문에 고개를 숙이고 부들부들 떨면서 지나와야 했습니다. 네 시간을 걸어서 고향집에 도착하니 애만 태우고 계시던 부모님이 먼 길을 걸어서 온 딸을 보고 얼마나 놀라고 반가워하시던지…. 고향에 도착한 마음은 천국이었지만 이곳도 한바탕 전쟁을 치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경찰서가 털리고 무기를 훔쳐가고 추격하고 쫓기고 무법천지가 다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 날을 고향집에 머무르다가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학교에 등교한 것이 며칠 만이었는지 기억 나지 않습니다. 제가 광주를 빠져나온 후의 이야기는 영화 <화려한 휴가>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에서는 도청앞에서 일어난 총격전을 중심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광주시민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총·칼·탱크에 의해 갇혀봤거나 총알이 나를 향해 날아오는 것 같은 공포, 직접 피해를 당한 피해자의 고통, 억울함 등을 영화로 다 표현하기는 어렵겠지요. 그래도 누가 어떤 목적으로 그 엄청난 일을 지시했는지, 그 사실을 숨기고 왜곡하며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이 짓밟혔다는 사실이 조금이라도 세상에 알려진 것 같아 다행스럽습니다. 하지만 참 억울한 것은 왜곡된 광주의 진실을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그동안 나와 내 친구들의 대학, 직장생활은 엄청 힘들고 고단했습니다. 취업 불이익, 군대에서의 학대, 직장에서의 소외, 인사에서의 차별은 물론이고 이유 없는 편견과 무시, 폭도들에 의한 사태라고 단정짓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변명도 반항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꿋꿋이 나와 내 친구들은 25년을 살아왔습니다.
반가움을 영화관 밖에 잠시 놓아 두고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며 우리는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과 분노 등 복잡한 감정으로 인해 참으로 많은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어떤 남자 동창생은 손수건이 흥건할 정도로 눈물을 흘려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퉁퉁 부은 눈으로 극장을 나오는 우리의 심정은 무겁고 암담하기만 했습니다.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근처 생맥주 집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희생자들과 광주의 명예회복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묵념을 올린 뒤 뒷얘기들을 나눴습니다. 눈물을 많이 흘린 친구들에게서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더군요. 차마 글로 옮길 수 없는 계엄군의 만행을 목격한 한 친구는 환영에 시달려 죽지 못해 산다고까지 합니다. 실제로 계엄군에게 잡혀 죽을 뻔한 친구도 있었고 대학생 형이 잡혀가 초주검이 되어 돌아왔는데 그 후에도 블랙리스트에 올라가서 취업도 못하고 폐인처럼 살아간다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친구들의 얼굴은 영화 속 영혼결혼식을 올리는 주인공 신애의 슬프디슬픈 사진 속 모습들이었습니다. “잊지 말아 주세요.” 애절한 신애의 목소리와 “우리는 폭도가 아니야”라고 울부짖는 민우에게 향하는 총소리가 여전히 귓전을 맴돕니다. 글·사진 이미희 mihilis@hanmir.com/<한겨레> 독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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