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코너/동교동얘기

DJ와 영욕 함께한 세아들

뱅키호테 2009. 8. 19. 12:18

DJ와 영욕 함께한 세아들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세 아들 홍일, 홍업, 홍걸씨는 부자지간이면서 정치적으로는 동지로서 고난과 영광을 함께 했다.

세 아들은 아버지의 구속과 연금 등 군사정권의 탄압으로 어려워진 집안을 이끌었고 `DJ의 아들'이란 이유로 정치적으로 억압을 받을 때도 지근 거리에서 아버지를 도와 훗날 대통령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런 아들들에게 미안함과 함께 애틋한 부정(父情)을 보였다.

사형수로 수감됐던 1980년 12월 세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 "너에게 준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할 때 아버지는 언제나 너에게 본의 아닌 일을 한 것 같아 죄책감을 느껴왔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장남 홍일(51)씨는 아버지의 정치적인 굴곡을 그대로 뒤따랐다. 아버지가 대선에 출마, 박정희 전 대통령에 맞섰던 1971년에는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고초를 겪었고 1980년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그는 1980년 결성된 30만명 회원 규모의 청년조직인 민주연합청년동지회(민청)를 실질적으로 이끌면서 국민의 정부 탄생을 외곽에서 도왔다.

차남 홍업(49)씨도 맏형과 함께 정치권 주변에서 아버지를 도왔다. 김 전 대통령 망명 시절엔 한국인권문제연구소를 설립했고 광고이벤트 회사 `밝은 세상'을 운영하면서 선거 홍보 책임을 맡아 아버지의 당선에 공을 세웠다.

그 역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형과 함께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기도 했다.

국내에서 아버지를 도운 형들과는 달리 3남 홍걸(46)씨는 일찍이 미국에서 머물며 `민주투사'였던 두 형과는 다른 삶을 살았지만 고교생 때인 1980년 아버지의 구속과 사형언도를 지켜봐야 하는 등 어릴 적부터 마음고생이 심했다.

꿈만 같았던 아버지의 대통령 당선과 함께 세 아들의 신분은 탄압받는 야당 지도자의 아들에서 `대통령의 아들'로 신분이 격상됐지만 이번에는 대통령 주위에서 이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권노갑 전 의원의 양보로 15대 때 목포.무안갑에서 금배지를 단 홍일씨는 재선의원 때인 2003년 `나라종금 로비' 수사 과정에서 돈을 수수한 혐의가 드러나 불구속 기소됐다.

또 홍업과 홍걸씨는 2002년 각각 청탁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와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아버지의 재임기간에 구속되는 비운을 겪었다.

당시 야당과 언론에서는 세 사람을 `홍삼트리오'라고 불렀고, 이런 낙인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채 이들의 진로에 족쇄가 되고 있다.

현재 홍일씨는 자택에서 파킨슨병과 투병하고 있고, 18대 무안.신안에 출마했다 낙선한 홍업씨는 가끔 지역구에 방문하면서 정치적 재기를 모색중이다.

홍걸씨는 중국에 머물며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삶을 모색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연합뉴스>